Story 1


숨 쉬듯 자연스러운 삶


어쩌면 우리는 너무 애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과를 위해 쉼 없이 자신을 몰아치는 매일은 우리를 숨 가쁘고 피로하게 만든다. 매 순간의 호흡처럼 편안하게 살아보면 어떨까. 일상의 호흡에 삶의 속도를 맞춰보는 일. 자연스러운 삶은 그렇게 시작된다.


자연과 비슷하게 살아가기

‘겨울엔 좀 춥게, 여름엔 좀 덥게.’ 남편과 나는 이렇게 지내는 게 몸에 좋다고 생각한다. 작년 겨울 우리가 사는 파주의 한파는 혹독했지만 보일러를 많이 틀지는 않았다. 외풍이 심하지 않으니 얇은 옷을 겹쳐 입고 양말과 덧신을 갖춰 신으면 견딜만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6년 동안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몇 번의 컨디션 난조는 있었지만 감기만큼은 걸린 적이 없어 뿌듯하다! 집 안팎의 온도에 큰 차이를 두지 않으려 한 덕이다.
자연과 비슷하게 맞춰 지내기. 자연스럽게 살기. 이게 우리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다. ‘자연스럽다’는 뜻은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이다. 무엇을 위해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상태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그해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목표를 적는 버릇이 있다.
올해에는 제일 윗줄에 ‘애쓰지 말자’라고 적어 두었다(지난해엔 ‘도도하게 살기’였으나 실패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글씨를 쓸 때도 그림을 그릴 때도 피아노를 칠 때도 대학을 갈 때도 취직을 할 때도 안달복달 지나치게 애쓰지 않았다. 적당히 타협했다.
그러니 그럴듯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게 아니냐, 누가 물으면 머리를 긁적이며 수긍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내가 애를 써서 한 일이 두 가지 있다. 20대 때의 연애와 시 쓰기. 둘 다 무지하게 애를 썼고 애가 탔다. 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잘하려고 너무 애를 쓴 탓에 내 연애는 위태로워지다 늘 실패했다. 나와 상대방, 둘 다 고단해졌다. 실패라고 생각하니 심장이 타들어 갈 정도로 괴로웠다. 몸도 아팠다. 애를 쓴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편히 두지 않는 일이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해대는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온갖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일이다. 지혜는 고통이 사라진 후 지나간 자리에서 태어난다. 그러니 고통 그 자체인 연애에 지혜가 깃들일 리 없었다. 나는 연애에 실패한 후 괴로운 터널을 빠져나오며 비로소 뽀얘졌다.
오래 끓여 진액이 우러난 사골 국물처럼 뽀얘졌다는 말이다. 순해졌다고나 할까. “지독함이 스스로 옷을 벗을 때까지(<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사랑을 유예하거나 포기했다. 다시 사랑이 찾아왔을 때 나는 나아졌다. 정말 모든 면에서.
시 쓰기도 마찬가지다. 언어를 붙들고 내 뜻대로 ‘부리려’ 할수록 시는 삿됨으로 일그러졌다.
내 안의 에너지를 믿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고 언어가 가려는 곳으로 놓아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너무 노력하는 사회

무슨 일이든지 애를 써서 잘 해내는 사람을 보면 두 가지 감정이 든다. 존경심과 안타까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인간의 의지와 노력에 존경심이 들다가도 한편에서는 안타까워지는 것이다. 그는 누구도 할 수 없을 만큼 제대로 해냈지만 혹은, 해낼 테지만 그후 존재에 남는 흔적은 어떻게 하나. 간절함을 품고 행한 뒤 존재에 내리는 것.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할까? 지나치게 애를 쓰는 일은 사람을 상하게 한다. 찰스 부코스키가 한 명언이 있다. “노력하지 마.(Don’t try)” 안심이 되는 말 아닌가? 나는 그의 말을 안달복달하지 말고 순리에 맞게 살라, 지나치게 애쓰다 상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사람이 상한다는 건 독해지고 비루해진다는 거다.
무엇이든 (행동이든 결과든 선택이든 과정이든) 적당한 거리에서 숨 쉬듯 받아들이는 자세, ‘되는대로 즐겁게’ 해보려는 자세가 좋다. 숨 쉬듯 자연스럽다는 것. 얼마나 좋은가!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안 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 군대에서나 통용될 법한 이 말은 끔찍하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다 인생을 망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안 되니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니 ‘자살각’ 같은 끔찍한 말이 유행한 것이다. 가장 좋은 건 생긴 모습대로 자연스럽게 사는 일 아닐까? 헬싱키로 여행을 갔을 때 놀랐다. 북유럽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분위기 때문이다. 이게 뭘까. 그들을 둘러싼 여유롭고 자연스러운 에너지. 적당히 풀어져 있지만 중심은 잡혀있는 걸음걸이. 나는 그곳에서 어떤 유행의 흐름도 감지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저 좋을 대로 옷을 입은 듯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뚱뚱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만한 몸집의 여성이 레깅스에 재킷 하나를 툭 걸쳐 입고 거리를 행보했다. 근사해 보였다. 대부분 타인의 모습에 무관심했다. 그들이 ‘자기’로 충만해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대체로 타자의 생각과 행동에 제약을 받지 않는가. ‘체면’과 ‘치레’라는 말은 관계 속에서 늘 우리를 억압해왔다.


무리하지 않고 나답게 편안한 자세로 사는 일. 좋은 삶을 꾸리는 열쇠라고 믿는다. 너무 편하게 말고 너무 애쓰지 말고 자연에 맞춰 천천히 살기로 하면 우리가 품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숨을 쉬듯 자연스럽고 견고하게

헬싱키에서 나는 ‘멋’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멋이란 ‘자연스럽고 견고하고 건강한’ 것이다. 자신이 자신임을 좋아하는 것, 자기다움으로 충만한 것! 타자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때, 멋 내지 않을 때 멋이 난다. 그곳에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 안에도 ‘자연스러운 당당함’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움츠려 있던 자아가 제대로 숨을 쉬었다. 아마도 타인의 시선이라는 통제 아래 있던 보이지 않는 사슬이 풀어진 것이리라. 그때 나는 내가 몹시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왜 헬싱키에서 유독 그랬는지 모르겠다). 며칠 동안 내내! 행복했다! 이런 게 행복이라면 행복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멋지다고 생각하는 마음, 내 생김을 긍정하는 마음에서 오는 게 분명하다. 한국에 오니 이 마음이 금세 사라져서 문제지만. 자신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왜 자주 숨는 걸까?
진정한 멋을 위해선 일단 자연스럽게 숨 쉬는 게 무리하지 않고 나답게 편안한 자세로 사는 일. 좋은 삶을 꾸리는 열쇠라고 믿는다. 미세먼지 탓에 먼 훗날 ‘숨 쉬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숨 쉬듯이? 그게 무슨 말이죠? 쉽지 않다는 뜻인가요?’라고 아이들이 물어 올지도 모른다. 너무 편하게 말고 너무 애쓰지 말고 자연에 맞춰 천천히 살기로 하면 우리가 품고 있는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지 않다고 난리였다. 우리가 잘못하면, 자연도 ‘자연스러움’을 잃을 수 있다니. 왠지 서늘하다.


박연준(시인)


2019/04/01 13:35 2019/04/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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