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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와 화해하고 나 자신을 지키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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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석정호 교수


나의 스트레스 지수는 나쁨일까 좋음일까?
과연 지금 나는 행복한가? 간단한 물음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누구나 저마다의 스트레스를 어깨에 짊어진 까닭이다. ‘2018년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률은 25.8명.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이 11.6명인 것을 감안하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많은 이들이 청소년기에는 학업, 청년기에는 취업, 중장년기에는 경제적 부담 그리고 노년이 되면 우울증에 시달린다. 정신건강의학과 석정호 교수는 오늘의 한국인이 꾸준히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있다고 염려한다.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정치나 사회문화적인 측면의 성숙도는 그만큼 뒤따르지 못했습니다. 빈부격차 등의 경제적 부작용도 존재하고요. 쉽게 흥분하는 국민의 기질적 특성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데 한몫 했죠. 세계보건기구와 미국정신의학회에서 ‘화병’을 한국인에게 많이 나타나는 문화 관련 특수 증후군으로 정의했을 정도입니다. 화병을 정신건강의학적 측면에서 진단하면 우울증과 불안증, 충동조절장애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질환에 시달려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정신뿐 아니라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 몸에는 선천 면역을 담당하는 자연살해세포(Natural Killer Cell)가 존재한다. 자연살해세포는 몸속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 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져 그 기능이 떨어지면 암 세포의 공격에 방어할 힘을 잃게 된다. 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농도가 올라가면 복부비만, 고지혈증,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정말 나쁘기만 한 걸까? 물론 적당한 스트레스는 일의 능률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동기부여 역할을 한다.
“스트레스가 내 몸을 위협하는 수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평소 자신의 컨디션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수면과 식욕은 가장 기본적인 척도이지요. 스트레스가 심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불안감으로 인해 잠을 하루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한다거나 반대로 너무 과도한 수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또 식욕이 너무 떨어져 체중이 급격히 감소하거나 과도하게 늘어 폭식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스트레스가 신체적 이상 신호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신체 증상도 스트레스 때문일 수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지거나 꾸준히 두통에 시달리는데 진단을 해 봐도 별 다른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는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려야 할 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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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호흡 훈련
스트레스가 심해지거나 공황, 불안 상태에 빠지면 가슴이 조여오고 호흡이 불안정해지면서 과호흡이 일어난다. 갑자기 숨을 빠르고 과도하게 쉬어 필요 이상으로 산소를 흡입하는 호흡곤란 증상이다. 과호흡으로 몸속에 산소가 많아지면 팔다리 말초혈관이 수축되면서 손발이 저리고 비틀어지는 증상도 나타난다. 과호흡이 발생하면 일단 안정을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경우 저용량 안정제를 투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호흡 증후군은 재발이 잦고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때문에 스스로 증상을 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석정호 교수는 평소에도 신체적, 심리적 이완을 위해 호흡 훈련법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흔히 복식호흡이라고 합니다. 배로 숨을 쉬는 방법이지요. 셋을 쉴 동안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다섯을 세는 동안 입으로 마치 피리를 불 듯 천천히 숨을 내쉬어줍니다.
꾸준히 이렇게 호흡 훈련을 하면 평소에도 스트레스로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킬 수 있습니다. 공황발작이 심해진다면 세로토닌 기능을 높여주는 약물 치료도 도움이 됩니다. 명상을 꾸준히 하는 것도 효과적인 스트레스 관리의 한 방법입니다. 하루 5분에서 10분 정도 편안한 자세로 내 몸의 호흡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잡념을 떨치고 천천히 복식호흡을 하면서 내 몸에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죠. 걷기 명상처럼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지면과 닿는 발의 감각을 느끼는 훈련도 도움이 됩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는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공황장애나 불안장애를 겪는 환자들을 위해 ‘정신신체통합치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호흡 훈련이나 명상뿐 아니라 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가 다시 이완시키는 점진적 근육 이완 훈련, 뇌파를 이용한 신체 훈련 등을 시행하고 있다.

스트레스로부터 마음 근육 지키기
하지만 때로 스트레스는 교통사고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한다. 사회적 사건사고처럼 외부적인 자극도 간과할 수 없다. 석정호 교수는 평소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강조한다.
“첫 번째는 내 신체 상태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이 중요하고요. 꾸준한 호흡 훈련을 통해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내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인간관계 유지하기 입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죠. 가족과 친구, 사회적인 안전망이 갖춰져 있으면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필요하지요.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지금 내 상황이 힘든데 어떻게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냐고 되묻곤 하십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란 억지로 좋은 생각을 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지금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한 거죠. ‘왜 나는 이런 상황에 빠졌을까’, ‘왜 내 주변은 다 이런 사람들뿐일까?’라고 탓하기만 하면 부정적인 상황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때론 바꿀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인정할 때 긍정적인 마음가짐이 시작됩니다.”
석정호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충분히 치료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경계선인격장애 환자들을 위해 마음 헤아리기 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경계선인격장애란 정서・행동・대인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고 변동이 심한 이상 성격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한 인격장애를 말한다. 자살 위험이 매우 높은 질병이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인 치료 프로토콜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석정호 교수가 대학병원에서는 최초로 팔을 걷어 부쳤다. 2013년부터 이어온 ‘마음 헤아리기 치료’가 더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안정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은 것이 그의 목표다.
“경계선인격장애 환자뿐 아니라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분 가운데서 종종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늘 드리는 말이 있어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은 버리시라고 말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 얽매이다 보면 반드시 죽음의 늪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죽음이라는 선택지를 포기하면 다른 대안이 보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죽는 게 아닙니다. 자살은 유가족에게도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깁니다. 세상에 오롯이 혼자라고 생각된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회 안에서 누군가 자살했다는 것은 남아 있는 구성원에게 큰 충격이 됩니다. 정말 힘들어서 삶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 오히려 죽고자 하는 마음을 포기한다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혼자라는 생각에 괴롭다면 언제든지 기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박채림 / 사진 안용길



2019/03/28 15:06 2019/03/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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