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1

부암동 백사실 계곡을 거닐다

“인간은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존재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사르트르의 말이다. 인간의 역사가 발걸음의 역사이듯, 사람에게 ‘걷기’는 본능이자 삶의 원동력이다. 그래서였을까?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은 “약보(藥補)보다 식보(食補)가 낫고, 식보보다 행보(行步)가 낫다”고 했다. 약을 먹는 것보다는 밥을 잘 먹는 것이 몸에 좋고, 밥을 잘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걷기라는 말이다.


부암동의 옛 정취를 따라가다
정약용은 ‘걷기’를 두고 ‘청복(淸福)’, 즉 ‘맑고 청량한 복’이라고 했다. 걷는다는 것은 몸을 살피는 일인 동시에 복을 누리는 일이다. 그러나 어쩐지 건강을 챙기기 위해 부러 걷고자 하면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는 걷는 길 주변을 가만히 살펴보자. 세상의 모든 길에는 이야기가 있다. 걷는다는 것은 길이 품은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갑갑하게만 보이는 빌딩 숲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명과 길의 생김새 등 다사다난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울은 어떤가. 한양도성을 중심으로 수많은 시와 노래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옛 기와집의 흔적이 남은 북촌이나 서촌도 좋지만, 필자가 자주 걷는 곳은 부암동 일대 백사실 계곡이다. 부암동의 백사실 계곡 산책의 시작은 창의문에서 시작된다. 1396년 서울 성곽을 쌓을 때 세운 사소문의 하나로 창건된 뒤 창의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창의문은 훗날 1413년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이 경복궁의 양팔과 같아 길을 내면 지맥이 손상된다고 주장하여 1416년에 닫았다가 1506년에 다시 열었다. 1623년 인조반정 당시에는 능양군(인조)을 비롯한 의군들이 이 문을 도끼로 부수고 궁 안에 들어가 반정에 성공한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창의문 문루에 올라가 성 안을 바라다보고 창의문을 내려서자 부암동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자두와 복숭아, 능금이라고 부르던 과일을 재배하는 과수원이 있던 한적한 곳이었다. 부암동은 원래 한성부 북부 상평방의 일부로 부암이라는 이름은 부침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암동 134번지에 있는 이 바위에다 다른 돌을 붙이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저마다 바위에 돌을 문질러 붙였는데, 이 바위를 부침바위 또는 부암이라고 부른 것이다.
고샅길을 내려가 다시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올라가자, 세계적인 화가로 이름이 높은 김환기 미술관이 보이고, 골목길을 올라가 다시 내려가자 거짓말처럼 산길이 나타난다. ‘서울에도 이렇게 깊은 골짜기가 있다니’ 하고 감탄을 거듭하며 걸어가는 나무숲 우거진 그 길목에 ‘백석동천’이라는 글씨 넉 자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가 바로 백사실 계곡이라는 백석동이다. 나뭇잎이 사각사각 발에 밟히는 비단결 같은 흙길이 이어진다. 산길을 따라 능선길로 가다가 아랫길로 접어들자 작은 폭포가 흐르는 암반 너머로 현통사가 보인다. 절 계단에 앉아 새참을 먹고 절문을 나서자 한 줄기 물줄기가 세차게 흐른다. 골목길을 따라 내려간 부암동, 이곳에는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종이를 만들던 한지 공장이 있었다. 조선 태종 때부터 고종 19년(1882)까지 순지와 환지를 만들던 조지서가 있었고, 1960년대까지만 해도 종이를 만들던 사람들이 그 전통을 이어왔는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부암동 269번지에 있었던 메주가마 터 역시 옛 정취가 사라진 지 오래다. 나라에서 이곳에 사는 백성의 생활고를 덜어주기 위하여 서울 관청에 납품하는 메주를 쑤는 권리를 주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빽빽한 집터만 남아있다.

이루 말할 수가 없는 풍경
흐르는 물길을 따라 내려간 30번 국도 옆에 세검정이 있다. 관서팔경 중의 하나인 세검정은 인조반정을 성사시킨 사람들이 이곳에서 흐르는 맑은 시냇물에 칼을 씻고 잔치를 베풀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하지만 문일평이 쓴 <조선사화>에는 그와는 다른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실에 있어서는 인조반정과 하등의 관계가 없고, 숙종 때 삼청동에 설치했던 총융청을 북한산성의 수비를 위하여 영조 때 이곳으로 옮기면서 경치 좋은 데를 택하여 수간정사를 새로 세우고 세검정이라 이름 지으니 때는 정조 24년이었다.” 이곳은 칼을 씻은 곳은 아니지만 실제로 사초를 썼던 곳이다. 사관이 임금의 말이나 나랏일을 적어 실록의 기본 자료로 삼은 원고의 먹물을 씻어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종이가 귀해 한 번 썼던 한지를 재생용지로 만들 때 다시 물로 씻어서 순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다산 정약용이 소나기가 퍼부을 때 세검정의 폭포 구경을 하고자 이곳을 찾았던 때가 1791년 여름이었고 그때 지은 글이 <유세검정기(遊洗劍亭記)>다. “창의문을 나서자 벌써 손바닥 만한 빗방울이 두세 방울 떨어진다. 말을 빨리 달려 세검정 아래 이르니, 수문 좌우의 산골짜기 사이는 이미 암코래 숫코래가 물을 뿜어내는 듯했고, 옷소매 역시 빗방울로 알록달록했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펴고 앉으니, 난간 앞의 나무들은 이미 미친 듯 나부끼고 뿌려대는 빗방울로 한기가 이렇듯 수많은 사람이 찾아와 아름다운 경치에 심취했던 세검정은 1941년에 가까운 곳에 있던 종이공장이 불타면서 주춧돌만 남긴 채 소실되었다가 1977년에 정자를 복원했다.

세검정이 품은 꿈 같은 경치
세검정에서 천천히 내려가면 만나는 문이 홍지문이다. 이 문은 탕춘대성의 성문으로 조선 숙종 41년(1715)에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세웠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21년 홍수로 오간대수문과 같이 허물어진 것을 1977년에 복원한 것으로 한북문이라고도 부른다.
그곳에서 석파정이 멀지 않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20번지에 있는 석파정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역사 속에서 대원군으로 더 알려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의 별서(別墅)인 석파정의 옛터 뒤쪽 바위에는 ‘三溪洞(삼계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원주인인 영의정 김흥근(金興根)이 살던 당시에는 삼계동정사(三溪洞精舍)라 불렀다.
김홍근이 소유주였던 석파정을 대원군이 빼앗아 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이야기가 매천 황현이 지은 <매천야록>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김홍근은 북문 밖 삼계동에 별장이 있었는데, 장안의 으뜸가는 명원이었다. 대원군이 그 별장을 팔라고 하였지만 김홍근이 거절하였다. 대원군은 다시 청하길 하루만 빌려달라고 했다. 그 무렵 별장이나 정자를 가진 사람은 남들이 놀이에 빌려달라고 하면 부득불 허락하는 것이 한양의 풍습이어서 홍근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대원군은 마침내 임금께 한 번 행차하기를 권해 임금을 모시고 갔다. 홍근은 임금께서 임했던 곳을 신하의 의리로는 감히 다시 쓸 수 없다고 하여 다시는 삼계동에 가지 않았으므로 삼계동 정사는 마침내 대원군의 소유가 되었다.”
그 뒤에 삼계동 정사의 이름을 석파정(石坡亭)이라 바꾸고 대원군의 호도 석파로 하였다. 소유권은 이희(李喜)에서 이준(李埈)으로 다시 이우(李 .) 등으로 세습되어 오다가 6.25 직후 고아원이나 병원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석파정에서 창의문 쪽으로 한참 올라가다 우측 골목길로 들어서면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살았던 비해당(匪懈堂) 터가 보인다. 그의 당호가 비해당이었고 안평대군이 도원에서 기쁘게 뛰어노는 꿈을 꾸고서 지은 정자가 바로 무계정사(武溪精舍)였다. 그러한 사실을 간직한 비해당 터에는 현재 집 한 채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안평대군의 글 속에 나오는 신숙주가 안평대군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보고 시 한 편을 지었다.
 “인간에겐 도원의 꿈이 있으니, 곧 그것이 세상 바깥으로 노니는 일이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안견이 그렸고, 그림에 담긴 사연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렸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 그것도 경복궁에서 멀지 않은 부암동에 있는 그의 집터는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다.
세상 바깥을 자유롭게 노닐고 싶었던 안평대군의 바람은 꿈으로 남았지만 맑은 계절 우리의 발은 가볍고 가을은 무르익었다. 그저 익숙하게만 바라본 풍경이라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으며 걷다 보면 우리는 장소를 걷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을 걷고, 문화와 역사를 거스른다. 그러니 백사실 계곡 답사는 역사와 자연을 만나는 서울 걷기의 백미라고 볼 수 있다.


신정일(문화사학자, <길 위의 인문학> 저자)



2019/01/04 15:00 2019/01/0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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