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질환 치료의 대가, 소화기내과 한광협 교수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게 낫습니다

한광협 교수는 없는 길을 새로 내가며 평생을 살았다. 결코 녹록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남은 세월도 똑같은 방식으로살아갈 작정이다. 그동안 간질환을 치료하는 데 쏟은 열정과 에너지를 알차게 갈무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에디터 최종훈 | 포토그래퍼 최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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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협 교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치료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찾아 시험하고 시도했다. 해외출장을 갔다가 독특한 치료법을 보고는 즉시 우리 현장에 적용할 만큼 적극적이다.


 무심코 켠 텔레비전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보았다. 몇몇 연예인들이 간검사를 받고 전문가의 조언을 받는 내용이었다. 간 건강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방송에 마음을 빼앗긴 건 연예인이 아니라 강의를 맡은 의사 때문이었다. 차분한목소리로 간간히 유머를 섞어가며 할 말 다 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든지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청중의 혼을 쏙 빼놨던 그 의사가 바로 한광협 교수다.


길을 내고 다지는 역할을 맡은 선발대
 한광협 교수는 평생 한 분야에만 매달려 살아온 간질환 전문가다. 그의 ‘공든 탑’이 유난히 빛나는 까닭은 누군가 완벽하게 닦아놓은 길을 달리기만 한 게 아니라 동료들과 힘을모아 스스로 길을 내가면서 전진해왔다는 점 때문이다. 한 교수가 간질환과 고된 싸움을 시작한 건 1980년대 후반. 당시만 하더라도 간에 암처럼 치명적인 병이 생기면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죽을 날을 기다리는 형국이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들어선 셈이지만 개척자에게는 도전 의지를 자극하는 길이기도 했다.


 한 교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치료 방법이라면 무엇이든 찾아 시험하고 시도했다.


 해외출장을 갔다가 독특한 치료법을 보고는 냉큼 우리 현장에 적용할 만큼 적극적이다.


 “일본간암연구회에 초대를 받아서 갔다가 우연찮게 미세한 관을 환부에 박고 약물을 투여하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도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치료법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돌아와서 말기 간암 환자에게 적용했는데 제법 의미 있는 효과를 보았습니다. 1990년 초에는 우리 병원에서 열을 가해서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인 온열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치료를 시도해 초기에 좋은 성과를 올렸으나 기대와 달리 차츰 성과가 떨어져 포기했습니다. 대신, 평생의 동반자인 방사선종양학과 성진실 교수와 의논해 1995년부터 ‘국소적방사선항암동시요법’을 도입했습니다. 간동맥으로 항암제를 주입하는 동시에 방사선 치료를 하는 방식입니다. 식도암 치료에는 더러 시도가 있었지만 간암에 쓰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결과는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중증 환자들의 생존 기간이눈에 띄게 길어졌습니다. 3개월 이내에 사망할 줄 알았던 환자의 생존 기간이 11개월까지늘어나기도 했으니까요.” 이 연구 결과는 이후 국제학술지에 발표되었고, 현재는 진행된간암 환자를 위한 주요 치료법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간과 관련해서는 질병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B형 간염 치료제 개발과 관련된 국제적인 임상 실험에 국내 최초로 참여했으며 간경변증 임상연구센터의 책임연구자로 국책과제를 수행하면서 여러 기관들과 협력해서 주목할 만한 실적을 올렸다.


 한편으로는 환자들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도 신경을 썼다. 개척자 군에 속하는한 교수로서는 피할 수 없는 사명이었다. 2003년에 출범한 간암클리닉만 해도 그렇다. 간암은 질병의 특성상 여러 분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환자들은 각 과를 돌아다니면서예약, 검사, 진료, 입원 절차를 하나하나 진행해야 했다. 진단과 치료에 필요한 기초자료를 모으는 데만 두 달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수두룩했다. 시간을 다투는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구조였다.


 “이편에서 노력해서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마땅히 시도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코디네이터를 두고 원스톱 서비스를 하고 싶다는 뜻을 병원에 밝히고 허락을구했습니다. 단기 입원실도 만들었고요. 지금은 세브란스병원 안에만 해도 15종의 암을전문으로 다루는 클리닉이 있지만 당시만 해도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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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8할은 행운, 또는 우연?
이처럼 갖가지 ‘최초’ 또는 ‘최고’의 기록을 생산해냈음에도 불구하고 한광협 교수는 자신의 삶을 ‘행운’, 또는 ‘우연’이라는 단어로 압축한다. 의료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결정적인 대목마다 의도하지 않았던 기회들을 만났다는 뜻이다. 사실 장래를 결정하는 단계에서 ‘의사’는 한 교수에게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기질적으로도 만화나 영화를 즐기고 공상하기를 좋아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 기질에 맞춰 진로를 결정할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화학이나 건축 쪽의 길을 기웃거렸다. 전방 지역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부친이나 대구를오가며 장사를 하던 어머니는 넓은 울타리가 되어줄 뿐, 자녀들의 삶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므로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방향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건 세브란스병원에서 일하던 누나의 한마디였다. 병원에서 일해보는 게 어떠냐는 말에 난생 처음 의사의 길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내과를 선택한 것은 수술실에 오래 서 있는 게 체질에 맞지 않아 외과계를 포기하고 내과계에서는 이왕이면 환자에게 가장 역할이 큰 내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크로닌의 소설 <성채>의 주인공 같은 내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감상도 작용했다.

 전문영역을 고를 때 역시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은사의 권유에 따라 간을 연구하기로 했고 진단방사선과와 협력할 내과쪽 파트너가 되면서 그 세계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간동맥을통해 아이오다인을 주입하는 표적치료법을 개발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던 유형식 교수의 연구에 참여하면서 간 전문가로서 단단히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어서 홀뮴-166을 써서간암을 치료하는 이종태 교수의 프로젝트에도 공동연구자로이름을 올렸다. 진단방사선과에서 혁신적인 치료법을 찾아낼때마다 카운터 파트너가 되는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오로지’운이 좋아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한 교수의 말은 이런 경험을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러나 우연도 되풀이되면 필연이 되는 법. 스쳐가는행운의 기회를 잡아서 자기 소유로 만드는 건 저마다의 몫이다. 만사가 운이었다는 한 교수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간질환 치료의 대가 한광협 교수의 오늘이 있게 해준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그의 말끝마다 튀어나오는 ‘협력’이라는 단어에 있었다. 한 교수는 주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성과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잘라 말한다. 분야와 영역을 초월해서 수많은 의료진이 머리를 맞대고 손발을 맞춘 덕에 간질환과 맞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는 뜻이다.


 연세간암연구회는 협력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고방식과 현실적인 필요가 만나 낳은 우량아인 셈이다.


 매주 목요일 아침 열리는 이 모임에는 소화기내과, 종양내과, 일반외과, 이식외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학과 등 관련과 전문가 40-50명 정도가 참석한다.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치료법을 둘러싸고 의견을 수렴해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모임이다. 임상 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석해 경험을 나누고 토론을 벌이는 자리다.


 “예전에는 모든 치료가 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외과는 수술을 선호하고 내과 역시 나름대로의 방식을 내세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간암은 어느 한 전문가의 실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닙니다. 서로 정보와 생각을 공유해서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길을 찾아내는 게 최선입니다.”


연세간암연구회는 세브란스의 울타리를 넘어 대한간암연구회로 발전했다. 간암이라는공동의 적을 겨냥한 연합전선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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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질환 치료의 대가,한광협 교수의 오늘이 있게 해준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그의 말끝마다 튀어나오는 ‘협력’이라는 단어에 있었다. 한 교수는 주위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성과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잘라 말한다. 수많은 의료진이 머리를 맞대고 손발을 맞춘 덕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는 뜻이다.

몸이 힘든 게 마음이 힘든 것보다 낫다
 50세가 되던 해, 한 교수는 자신과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정년까지 남은 기간을 5년으로나누어 전반부는 연구에 매진하고, 후반부는 교육과 사회봉사에 헌신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굵직한 국책사업을 수행하는 게 전자에 속한다면, 국민의 15%가 간염을 앓고 있는 몽골을 돕는다든지 북한 어린이들에게 간염예방주사를 놓아줄 방법을 찾아본다든지 하는건 후자에 속한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진료 면에서 탁월한 실적을 내서 전 세계 의사들이 따라올 길을 제시하려는 욕구를 바닥에 깔아두고 있다. 그동안 발표한 SCI 논문이 130편이 넘는 다작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 더 높은 수준의 논문을 목말라 한다. 간질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작업도 과제로 남아 있다. 또한 환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치료를 받도록 하는데 관심을 두고 환자 부담을 줄이고자 학회를 통한 의료보험정책의 변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이제 한숨 돌리고 쉬어갈 법도 하건만, 한 교수가 이토록 자신을 닦달하는 건 약속에 충실하고 싶어서다. 쉽지 않겠지만, 새로운 길을 내는 개척자의 심정으로 같은 길을 동행하는동반자와 함께 끝까지 가볼 요량이다. 평생 심중에 두고 살았던 말마따나 마음이 힘든 데 비하면 몸이 힘든 것쯤은 얼마든지 참아줄 수 있지 않겠는가.

profile 한광협 교수(소화기내과)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1986년부터 연세의대 내과학교실에 재직 중이다.대한간암연구회 회장, 대한간학회 총무이사,국가암관리사업지원단 암조기검진사업위원회간암 소분과위원장, 국제간암연구회 이사를역임했으며, 2005년부터 보건복지부 지정간경변증 임상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현재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과장, 소화기병 연구소장, 간암클리닉 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태간암연구학회(APPLE)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2011/10/14 15:41 2011/10/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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