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과 중재연구로 암과 싸워 승리할 길을 여는 명장, 정현철 교수

환자가 적극적이어야 성공 확률도 높아집니다

“암 치료의 목적은 완치, 또는 동행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암도 알아야 되고 자신도 알아야 합니다. 암은 내 몸이면서 또 다른 몸이기도 한 까닭입니다. 암세포는 세포 하나하나마다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암환자 한 사람에게 수억 개의 암세포가 있으니까 수억 개의 다른 암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 어마어마한 데이터를 만들고 분석하는 것은 어렵더라도 언젠가는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지금은 진단, 치료 기술, 약품까지 모두 좋아져서 항암치료를 겁먹고 피할 이유가 없습니다. 관리만 잘 하면 얼마든지 동행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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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인류의 싸움이 백중세를 지나 역전 국면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초반에는 적의 압도적인 공세 앞에 무력하게 당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전열을 추스르고 곳곳에서 반격을 펼치고 있다. 지구전을 치르는 동안 장비와 기술이 몰라보게 발전해서 이제는 암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 게 가능해졌다. 어디 그뿐이랴? 수술 전후로 미리 암의 기세를 꺾어놓거나 끝까지 남아 재기의 기회를 엿보는 암세포들을 철저하게 소탕하는 종양내과의 작전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평생 그 싸움을 진두지휘해온 명장, 정현철 교수를 따라 그 치열한 전장으로 들어가보자.


‘약물치료 전문’이란 개념으로 종양내과를 이해해도 좋을까요?

그보다는 고형암, 그러니까 혈액이 아닌 장기에 생긴 암을 전반적으로 본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겁니다. 항암제를 이용한 약물치료는 기본이고 신약을 찾아내는 중개연구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새로운 약품에 대한 갈망이 크고 개발 움직임도 활발해서 지금은 1년에 신약이 수십 개씩 나오는 실정입니다. 또 통합진료와 완화의료에도 개입합니다. 예전에는 암에 걸리면 곧 세상을 떠나곤 했지만, 이제는 병을 가지고도 오래 사는 세상이 된 터라 삶의 질을 생각하고 여러 장기를 지켜보며 전이에 신경 쓰는 전문가들이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수술과 약물치료는 꼭 병행해야 하는 건가요? 어느 한 쪽만 택할 수는 없습니까?

암은 수술치료가 원칙입니다. 0-1기 정도는 수술로 완치가 됩니다. 하지만 2-3기 환자는 얘기가 다릅니다. 암 덩어리가 컸거나, 수술은 잘됐지만 환부 주위에 손상이 있었거나 피 속에 암세포가 보일 만큼 증상이 심했다면, 일정기간 항암치료를 해서 자기 면역체계로 충분히 통제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동안 연구한 결과가 쌓인 덕에 암의 종류와 병기에 따라 치료 기간이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을 수술 후 보조치료라고 합니다. 반면에 유방암이나 직장암, 인두암처럼 잘 듣는 약품이 있는 경우에는 먼저 약물치료를 해서 크기를 줄이는 사례가많습니다.


하지만 항암치료는 웬만해선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그렇게 알고 계시지요. 항암치료 얘기만 꺼내도 막막해하고 눈물까지 보이는 환자가 대부분입니다. 절대로 힘들지 않게 해드리겠다고 약속해도 좀처럼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건 다 옛날 얘깁니다. 항암제가 부드러워졌거든요. 표적치료제는 더 말할 것도 없고요. 머리칼이 빠지지 않는 항암제도 수두룩하고, 부작용을 막아주는보조치료제도 흔해졌어요. 물론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고통을 일으키는 항암제를 꼭 써야 하는 경우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지극히 일부예요.

겁먹고 피할 일이 아니라는 거죠. 암 치료는 환자가 적극적이어야 성공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직장생활이든 사업이든, 또 손자손녀를 돌보는 일이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선에서 계속하는 게 좋습니다.


지레, 또는 도중에 항암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를 보면 몹시 아쉽겠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치료 과정을 잘 따라오지만, 아직도 다른방법을 찾겠다며 치료를 미루다가 상태가 심해진 채로 다시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처음에 조금만 힘을 썼더라면 더 많이 나았을 텐데, 참 아쉬운 일입니다. 지금은 진단과 치료 기술, 약품이 다 좋아져서 몸에 큰 무리를 주면서 암세포를 전멸시키지 않아도 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습니다. 관리만 잘 하면 얼마든지 동행이 가능해졌다는 얘깁니다. 유방에 큰 종양 덩어리가 남은 환자여도 간이나 폐로 번져서 기능을 망치지 않도록 단속만 잘 하면, 다소 불편 하지만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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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줄었다지만 신약을 쓰는 건 그래도 겁이 납니다. 검증도 아직 안 끝났잖습니까?

신약개발 과정을 몰라서 나온 오해입니다. 약품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신경을 쓰는 것이 안전성입니다. 그게 확보된 뒤에야 비로소 효과를 논하기 시작합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식약청이 그런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부작용을 비롯한 문제점들을 미리 검증하고 걸러낸 뒤에 임상에 투입해 효과를 가늠하는 겁니다.


대상도 제한적입니다.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 가능한 환자는 50가지가 넘는 항목에 해당되어야 할 만큼 까다롭게 선정되기 때문에, 우리끼리는 ‘국가대표급 환자’라고 부릅니다. 다른 치료법이 없거나 기존 약품과 함께 쓰면 더 효과적인 경우에 적용합니다.


적어도 세브란스 종양내과가 권하는 신약이라면 믿어도 된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병원은 기계를 만드는 데가 아니라 환자를 돌보는 곳이어서 소프트웨어와 팀워크가 핵심입니다. 세브란스병원은 이미 1970-80년대부터 외래에서 환자에게 항암약물치료를 시행할 만큼 선구적이었습니다. 식약청을 도와가며 신약치료에 관한 제도를 만들고, 국가기관의 허락 아래 신약치료를 시행한 것도 세브란스가 최초입니다. 그래서 의료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험과 데이터가 그만큼 풍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10년 생존율 데이터를 가진건 세브란스뿐입니다. 10년 생존율 데이터는 15년 이상 환자를 관리했고 그 자료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수명이 길어져서 추적치료가 필수적인데, 이러한 데이터들은 현재를 기반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소중한 토대가 되어줄 겁니다. 뿐만 아니라 신약치료의 질을 높이는 쪽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수익과 상관없이표준 치료 분야의 2배나 되는 인력을 신약치료에 투입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암과 오랜 시간을 싸워온 까닭인지, 한계를 모르는 백전노장의 느낌이 듭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환자를 잃어버리거나 치료에 진전이 없을 때마다 한계를 절감합니다. 암환자 가운데 50%는 그 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니까요. 사망률이 90%에 가깝던 시절보다는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그래도 싸움에 이기고 살아남은 환자들을 보면서 보람을 찾습니다.


재발하면 생존 기간이 평균 2년쯤 된다는 통념을 깨고 10년씩 삶을 이어가는 유방암 환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조교수로 임용됐을 무렵 치료를 시작해 24년이 넘도록 만나고 있는 환자도 있으니까요. 대부분은 약이 잘 맞는 체질을 가진 데다가 주어진 기회를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붙잡은 분들입니다.


어쩌다 이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데다 치열하기까지 한 전쟁터에 발을 딛게 되셨습니까?

부친을 비롯해 집안에 의사가 많았던 까닭에 다른 직업을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종양학 분야에 뛰어든 데는 은사이신 김병수 교수님 영향이 컸어요. 그때만 해도 암 진단은 곧 사망을 의미했는데 치료의 방향, 가능성, 연구방법까지 설명하시는 걸 들으면서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외과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조교수 신분이었는데도 환자를 꾸준히 의뢰해주셨거든요. 일주일에 150명 안팎을 진료하고 신환을 받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지만, 덕분에 평생 보물이 될 경험을 쌓습니다.

미국 MD앤더슨 병원에 계시던 홍완기 교수님께는 큰 스케일을 배웠습니다.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는 차원을 넘어, 지형을 살피고 날씨를 컨트롤하는 법까지 익혀야 한다고 하셨거든요.

그분들이 오늘의 교수님을 있게 한 멘토들이었던셈이군요.

환자들에게서도 많은 걸 배웠습니다. 그중에서도 한 유방암 환자가 많이 생각납니다. 재발 후 7-8년 동안 생존 하셨는데 병이 계속 악화된 터라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는 상태였어요.
하루는 이유 없이 속이 뒤숭숭하고 잠이 안 와서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회진을 시작했습니다. 방에 들어갔더니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네셔서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병상 두 개를 더 돌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보호자들 말로는 가족들과 이미 마지막 인사를 끝내고 제가 오길 기다렸다더군요. 그때 깨달았어요. 모든 환자와 그런 관계를 맺고 치료를 해야 한다고요. 의사가 환자를 생각하는 것보다 환자가 의사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 많고 크다는 사실도요.

 세브란스병원웹진: http://biog.isererance.com
 에디터 최종훈 | 포토그래퍼 최재인

2014/10/08 11:23 2014/10/0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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