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딘 ‘암치료 신약’ 건강보험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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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 환자가 응급실을 통해 급하게 입원했다. 늑막에 물이 차서 왔단다. 전이암·재발암 환자를 보는 종양내과 의사로서 늘 있는 일이라 별로 놀랄 것도 아니지만 누군지 확인한 순간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수술·항암치료를 받았으나 재발해 2008년부터 필자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 유방암 환자였다. 완치가 어려운 전이성 유방암으로 1차 항암·표적치료 후 잘 지내다가 최근 병세가 나빠진 상태였다.

이 환자는 가이드라인에서 권고하는 또 다른 표적항암제를 사용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경제적 부담으로 치료가 어려웠다. 그래서 필자와 환자가 상의해 찾은 것이 바로 임상시험이었다.

환자가 필요한 표적항암제가 기본적으로 투여되고 추가적인 신약의 효능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이 곧 시작될 예정이니 기다리고 있었다. 표적항암제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이 진행되는 바람에 환자는 늑막에 물이 차고 숨이 가빠져 병원을 찾게 된 것이다. ‘괜히 임상시험을 소개해 환자를 힘들게 했나?’라는 자괴감과 미안함은 병실에서 환자와 마주하는 내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유방암은 완치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환자처럼 전이성 유방암은 다르다. 재발·전이가 되면 완치는 어렵고 생존기간 연장과 환자 삶의 질 개선이 가장 중요한 치료 목표가 된다.

지난 십여 년간 탈모 등 항암제 부작용이 심했다. 이제는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표적항암제가 유방암뿐 아니라 대부분의 암에서 속속 개발·승인되고 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암환자에겐 효과는 좋고 부작용이 적은 신약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는데 정작 국내에선 이런 신약의 건강보험 적용이 늦어져 암환자가 제때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에게 제때 사용되지 못하는 암 치료제는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고,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에선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약들이다. 우리는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실비보험이 있는지, 경제적 능력이 어떠한지 가늠하거나 물어보고, 임상시험이 빨리 시작되길 기다리고, 그렇게 씨름하고 있다.

올해 건강보험 흑자가 17조원이라는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환자에게 사용돼야 할 돈이 사용처를 못 찾고 쌓인 것이다. 최근 더욱 고가의 약인 면역항암제까지 개발되고 있다. 고비용으로 인해 암환자에게 이런 신약이 그림의 떡이 될까 봐 의사단체가 나서서 암 치료 보장성을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건보 재정을 적자로 몰아갈 수 있는 고비용 항암제에 대해 보험 급여를 인정하는 데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선진국에선 전혀 문제 없이 사용되는 치료제를 2016년 대한민국 진료실에서는 어떻게라도 사용해 보려고 의사와 환자가 머리를 싸매고 어색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야겠다. 이제 늑막에 물이 찬 환자를 보러 가야 한다. 환자도 답답하겠지만 나도 답답하다.


세브란스병원 혈액종양내과 손주혁 교수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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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0 11:34 2016/08/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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