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호 회장은 2000년 국내 최초로 체내 삽입형 좌심실 보조장치 이식수술을 받고 그로부터 1년 반 뒤에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1994년 50대 중후반에 이르러 오른손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면서 차츰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때 손이 떨리더니 언제부턴가 가슴에 통증이 찾아왔다. 점차 통증이 잦고 어느 순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인근 대학병원을 찾으니 심장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아들 결혼식과 그동안 하던 일이 있어 이리저리 시간을 미루다 그만 때를 놓치고 말았다. 병원에서는 부산에서 치료할 수 없으니 다른 대학병원을 알아보라고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들은 평소 친분이 있던 분이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그 이후 약 5년간 세브란스심장혈관병원의 정남식교수에게 심부전증에 대하여 꾸준히 약물요법으로 치료하여 잘 지낼 수 있었으나 이후 약 5년이 지난 다음부터는 약물에도 반응이 없는 말기 심부전증으로 급격히 악화 되어 누워 있기에도 힘든 상태가 되었다. 오로지 치료 방법이 심장이식 수술 뿐이었다. 심장이식의 대상이었으나 뇌사자가 매우 드물고 증상은 심각하게 악화되어 의료진들은 김기호 회장이 나이가 많아 수술이 쉽지 않다고 판단했지만 심부전증에 대한 수술을 결심했다. 작은 희망이지만 살아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김 회장의 강한 결심에 수술이 진행됐다. 하지만 수술 역시 쉽지 않았다. 수술을 담당한 장병철 원장은 수술에도 심장이 회복이 되지 않아 체내 삽입형 좌심실 보조장치 이식수술을 결정했다.

김기호 회장은 “다른 생각은 없었지. 그냥 사업을 정리할 때 까지만 살고 싶은 마음이었으니까”라며 “수술이 잘 못되면 연세대 의대 학생들을 위해서 시신기증까지 생각했지”라면서 당시 절박했던 심정을 토로했다. 부인 이노미씨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어. 그저 살아나오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지”라며 수술실 앞에 켜진 ‘수술중’이라는 글자의 불이 꺼지지 않기만을 바랬다고 한다. “불이 꺼지면 수술이 잘 못된 거니까···. 그 몇 시간이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웠는지···”라는 이노미씨는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아내 이노미씨를 ‘그림자’라고 불렀다. 아프기 전에도 그랬지만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항상 자기 곁을 지켜준 아내였다. 지금도 이노미씨는 김 회장의 곁을 지키며 가장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지.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니까.”

앞가슴 밑의 복부근육에 기계를 삽입하고 배터리를 이용해 펌프를 작동하는 보조장치는 당시 세계적으로 2,000여건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힘든 수술이었다.

수술은 성공했지만 보조장치를 달고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보조장치 이식수술이 고가의 수술이라 병원에서는 서울에 남아 치료받기를 권했지만 김 회장은 비용 문제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퇴원을 결정하자 장병철 원장은 직접 자신의 차를 몰아 김 회장 내외를 집까지 바래다 줬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기계를 능숙하게 다룰 수는 없는 일. 김 회장 내외는 기계에 이상이 생길 때마다 장병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기 일쑤였다. 장병철 원장은 자다말고 걸려오는 전화에 하나하나 차분하게 설명하며 두 사람을 안정시켰다. 장병철 원장은 보조장치 이식수술 이후에도 김 회장과 계속 연락하며 운동요법과 식이요법 등 김 회장의 건강을 챙겼다. 장병철 원장은 한 달에 한번씩 김 회장을 찾아 그의 상태를 관리했다.

그렇게 지내길 1년 6개월. 2000년 11월 대구 영남대병원에 입원했던 뇌사자한테서 심장을 이식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병원에서 장병철 원장에게 심장이식수술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보조장치는 짧게는 2~3개월 정도만 달고 있는게 정상이다. 김 회장처럼 장기간 달고 있는 환자는 당시에는 세계적으로도 10명 내로 몇 명되지 않는다.

이식수술을 받고 김 회장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그동안 일정시간마다 관리해야 됐던 기계가 없으니 신경 써야 되는 일이 없었다. “수술하고 나서 할일이 없었지”라며 홀가분했던 심정을 전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후 회복도 빨랐다.

“보조기를 달았을 때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했는데 이식수술을 받고 나선 마음대로 외출도 하고. 세상이 완전히 달랐지.” 김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2번의 큰 수술을 겪으며 김 회장은 2003년 심장 장애인들과 함께 부산심장장애인협회를 설립했다. 남들이 한 번도 겪기 힘들다는 수술을 두 번이나 치르고 나니 자기 자신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자신과 같은 심장 장애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니 협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그렇게 심장전도사의 길을 시작했다.

현재 1,800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된 협회를 운영하고 있는 김 회장은 협회를 찾아오는 심장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또 이곳저곳 강연을 다니며 치료와 자활운동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김 회장은 “강연을 가면 사람들이 ‘심장 온다’고 말해. 매일 다니면서 심장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관리해야 되는지 말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심장이라 그래”라고 말하며 멋적어 하면서 웃어보였다. 2006년 4월에는 보건복지가족부를 찾아가 정부의 심장질환 예방대책 수립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을 찾은 피서객들에게 심장 장애 극복 과정과 예방, 치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그러던 중 뇌경색이 찾아왔다. 한창 바쁜 시기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뇌경색도 김 회장의 의지를 꺾진 못했다. 두 번의 큰 수술을 겪은 뒤라 ‘이까짓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김 회장은 “이 정도는 살아날 수 있다는 집념이 생기더라구. 고집도 있고 하니까···”라고 했다. 장병철 원장은 천운이라며 그의 열정을 높게 평가했다. 당시 후유증이 아직 남아있지만 뇌경색을 겪고 나니 삶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져 전보다 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큰일을 겪고 나니 삶에 대한 애착이 더 커졌어.”

아직 협회 인가가 나지 않아 활동하는데 제약이 따른다는 김 회장은 인가가 나면 전국 16개 시도에 분회를 두고 이사진을 구성해 지역별로 회원들을 관리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예방과 관리가 중요한 심장질환은 환자들의 재활운동이나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전용센터가 필요하다”며 협회 인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18개의 약을 5번씩 복용하는 김 회장은 새로운 사업도 준비 중이다. 장애인의 직업재활과 보호사업, 특수·직업교육을 통해 장애인들의 복지를 증진하는 사회복지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올 4월 63빌딩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면서 행사에 참석한 여러 복지분야 관계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장애인 복지를 위한 협회 창립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김 회장은 부산심장장애인자립장을 운영하며 인쇄업에 능력 있는 심장장애인의 취업을 보장해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장애인들의 제일 큰 고통은 일자리지. 장애인 고용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푸대접받거든. 일자리가 없으니까 자꾸 위축되고. 장애인이 일자리 가지면 삶이 적극적일 수밖에 없잖아.” 김 회장은 장애인 복지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회복지법인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과 장애인생활시설, 직업훈련시설 등 장애인들이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후원하게 된다. 현재 한국고용촉진공단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어 곧 실현될 수 있을 거라고.

김 회장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일을 할 생각”이라며 “집념이 강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09/04/03 18:46 2009/04/0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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