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의료보험법이 제정되어 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은 1963년이나, 실질적으로 500인 이상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에 한하여 강제 가입을 골자로 하는 사회보험 성격의 직장의료보험이 실시된 것은 1977년부터이다. 이후 한국의 의료보험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정착되어 1988년 5인 이상 사업장 및 농어촌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이듬해인 1989년 도시 지역 의료보험이 시행되며 전국민 의료보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2000년에는 지역 의료보험 조합과 직장 의료보험을 단일화하여 국민건강보험으로 공식 명칭이 변경되었다. 1977년 본격적인 “의료보험”이 도입된 이후 2000년에 “국민건강보험”으로 명칭이 변경된 것은 이 기간 동안 있었던 한국의 경제 사회적 발전과 함께 의료 서비스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합의 내용에 있어 큰 변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건강보험제도를 주축으로 하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단순히 질병이라는 재난에 대한 구호의 개념을 넘어 포괄적인 의미의 “건강”이라는 가치 추구를 향한 더 큰 국민적 욕망에 부응해야 하는 과제를 맡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의료보험 도입과 확대 과정 자체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 산업화를 이룩한 경제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그 결과 피보험자인 환자들의 질환 양상 및 의료 욕구 또한 큰 폭으로 변화했다. 영아사망률, 기대여명 등의 전통적인 보건 지표가 호전된 수준을 넘어서 첨단 의료 장비의 보급, 의료 인력 및 기술의 양적 질적 발전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과 견주어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하였고 높은 의료 접근성에 힘입어 국민들이 국가 의료 체계에 바라는 기대치도 단순한 질병 치료의 개념을 포함하여 건강 관리와 조기 진단, 만성 질환 관리,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한 신 의료 기술 및 신약 치료, 말기 질환에 대한 완화 의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화, 고도화 되었다. 내분비대사질환은 이러한 보건 의료 환경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분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 의료보험이 도입되고 확대 정착되는 기간은 전 세계적으로도 내분비학의 학문적 발전과 임상 의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해 온 시기와 일치한다. 이십 세기 초부터 여러 호르몬과 내분비 기관의 기능이 학문적으로 규명되기 시작한 이래, 1960년대 이후 방사 면역 측정법의 도입으로 혈중 호르몬 농도 측정이 임상적으로 가능하게 되었으며 유전자 재조합 기술 등을 이용한 합성 호르몬의 개발로 인하여 내분비기능이상에 대한 치료 또한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당뇨병을 중심으로 진행된 대규모 전향적 연구들을 통하여 내분비대사질환에 대한 적극적인 진단과 치료가 뇌심혈관질환 등 전통적인 중증 질환의 일차 예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러한 내분비학 자체의 발전과 함께, 급격한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로 인한 인구 고령화, 청장년층의 내분비대사질환 이환율 증가 등에 의하여 내분비대사질환과 관련된 의료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내분비대사내과 분야의 진료 과정은 기타 임상 분과와 비교하여 시술 등의 구체적인 의사 행위보다는 혈액검사, 영상검사 등에 더욱 의존적이며 치료 과정 또한 장기간의 다양한 경구 약제를 통한 약물 치료가 주를 이룬다는 특징이 있다. 명백한 임상 증상이 없는 질병 단계에서의 건강검진 대중화 및 조기 진단 기술의 발달과 신약 개발의 활성화로 인하여 이러한 특성은 과거보다 더 확연해지고 있다. 보험료라는 한정된 가용 자원을 기반으로 최대한 의료 보장성을 강화해야 하는 정책적 입장에서 내분비대사질환 진료와 관련된 대부분의 심사 평가 과정은 검사 항목의 규모와 약제 처방의 적정성 감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분비내과 전문의가 제공하는 근본적인 의료 서비스는 검사 행위 또는 처방하는 약제 자체라기보다는 일종의 solution shop으로서, 현재 환자의 질병 단계에서 필요한 검사의 종류와 우선 순위가 무엇이고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 방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판단 과정 자체에 있다. 즉, 의료비 절감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의료 현장에서의 진단과 치료 과정을 통제하는 것이 심사 평가 과정의 본질이라면, 기계적이고 획일화된 진료 패턴을 넘어서서 능동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최소한의 검사 항목을 선정하고 최적의 치료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의료 자원 또한 의료진의 경험과 숙련도에 기반한 의학적 판단 능력이다. 그리고 다른 하드웨어적 의료 인프라와 마찬가지로 의료진 자체의 임상적 능력이 계발, 유지되고 전수되는 데에는 사회적 합의에 따른 비용 투자가 요구된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정보기술의 의학적 활용에 따라 의사 결정자로서 임상의사의 역할은 향후 점점 더 약화될 것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임상 현장에서 의료진의 역할은 보험 시스템이 수가의 개념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 차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검사, 진단, 치료 과정 전반에 개입하고 다른 비용 수준을 상호 유기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표준화된 알고리즘을 따라가는 수동적인 의료진의 역할 뿐 아니라,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의료 정책 철학이 수립되는 과정에 의료진의 임상 경험이 합리적으로 수렴되고 이를 바탕으로 진료 행태가 능동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지속적인 의료 수요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공급자, 이용자 모두의 도덕적 해이 및 의료 서비스 자체의 질적 저하의 위험을 견제하며 장기적으로 의료비 절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2015.10.30. 대한내분비학회 학연산 및 추계심포지엄 보험위원회 講演
2016/01/12 13:46 2016/01/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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