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은 면적이 세계 9위로 한반도 면적의 12배이고, 인구는 약 1700만명으로 이 중 약 13만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필자는 2년 9개월전 강남세브란스 체크업 소장으로 알마티시 소재 알파라비 국립 대학 (Al-Farabi Kazakh National University) 건강검진센터의 설립과 시스템 구축을 위해 방문하였고, 금번에는 세브란스병원 국제팀의 제안으로 강남세브란스 암병원장으로서 알파라비 대학 검진센터에서 진료 및 강의를 위해 비뇨기과 정병하교수, 산부인과 김재훈교수, 그리고 갑상선외과 이용상교수와 진료팀을 구성하여 방문하였다. 1934년도에 설립된 알파라비 대학은 학생수 2만명, 교수수 2천명으로 카자흐스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캠퍼스 면적은 약 30만평정도이다.

 

방문 첫날 오전에는 만년설의 천산(天山)을 병풍삼고 자리한 알파라비대학 캠퍼스를 투어하고 검진센터 소장인 Ernest Kaliyev씨의 따뜻한 환대속에 오후 진료를 준비 하였고, 점심에는 대학의 고문으로 있는 고려인 An Yevgenyi씨 부부를 국립암센터와 양해각서체결을 위해 알마티를 방문한 김근수 병원장 일행과 함께 만나서 서로의 현안을 공유하고 우호를 나누었으며, 향후 이 행사를 매년 개최했으면 하자는 의견을 나누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 대학 캠퍼스로 돌아오니, 차가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 낙엽이 수북히 쌓이기 시작하고 분주해진 청소부는 하염없이 낙엽을 쓸고 있었다.

 

오후 진료는 두시부터 다섯시까지 소화기내과, 비뇨기과, 부인과, 갑상선외과 진료를 하였는데, 교수들의 진료 참관을 위해서 젊은 의사 1~2명, 간호사 1명, 통역 1명이 각각 배치되었고, 여러분들의 협조하에 무난히 진료를 마칠 수 있었다. 환자들은 참 순박하고 의료 혜택을 잘 받지 못하는 환경이기에 더욱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녁에는 진료팀을 위하여 알파라비대학측에서 주최하는 만찬이 있었는데, 주메뉴는 말고기 순대와 양고기 스테이크였다. 보드카병이 비워지면서 서로간의 우호는 점점 깊어졌고 진정성을 갖고 양기관의 발전을 약속하며 첫날밤은 이렇게 깊어 갔다.

 

이튿날, 전날 내린 비로 알마티 가을 하늘은 시리도록 푸르고 캠퍼스 단풍은 더욱 아름다워져 만추의 서정을 느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출근하니 환자들 및 직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환자 한사람당 15분 이상 ‘심층 진료’하니, 환자들이 다 만족해하며 ‘언제 또 오느냐’, ‘내년에 또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다. 환자와 의사간 충분한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점심은 진료팀과 고려인 식당에 갔다. 1937년 아무 준비도 없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척박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지난 80년간 후손들에게 식생활 습관을 전수하고 후손들은 또 이어받았으리라. 당시 카자흐스탄에 없었던 무 대신에 당근으로 김치를 만들어 먹은 이후 이어져 온 당근 김치와 가자미 식혜를 반찬삼아, 지금은 사라진 옛 한반도 북부 지방 음식인 ‘국시’, 그리고 함경도식 같지만 색다른 순대와 족발을 먹었다. 점심때 식사에 곁들인 반주로 인해 졸립기도 했지만, 본인의 의무 기록을 이것 저것 바리바리 싸들고 온 카자흐스탄 환자들을 위해 오후에도 열심히 진료를 하고 마지막 환자를 보니 다섯시, 이렇게 카자흐스탄 진료 세 세션이 끝났다. 진료를 참관했던 카자흐스탄 젊은 의사들이 한국에서 온 교수가 진료하는 것을 보고 도움이 되었기를 기대해본다. 아주 오래전 서양에서 온 알렌과 에비슨 박사가 그랬듯이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 넣고 싶었는데….

저녁은 알파라비 대학측에서 알마티 시내가 한눈에 파노라마처럼 내려다보이는, Abay 식당으로 안내한다. 카자흐스탄의 의료 실정을 체험한 교수들은 지난 6여년간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구축한 알파라비 대학과의 협력 관계를 잘 유지하고 카자흐스탄의 의료 발전를 위해 이번과 같은 행사를 매년 개최하며 더 활성화하자고 제안을 한다. 카작 전통 음식인 시큼한 마유 요거트, 말고기, 양고기 등을 먹으며 포만감과 함께 봉사에 대한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끼며 이렇게 이틀째 저녁도 지나가고 있었다.

 

셋째날, 오전은 대학에 가서 강의를 하고 오후에는 국립암센터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아침 일찍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다시 알파라비 대학에 갔다. 도서관 4층에 있는 강의실은 천장이 높고 미색과 짙은 살색의 내벽이 이슬람풍의 아라베스크 공예 문양의 배너가 드리워진 기둥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각지에서 초청된 약 25명의 젊은 의사들을 대상으로 필자를 포함한 세명의 교수가 각각의 암 전공분야에 대하여 강의를 하였다. 영어로 강의를 하면, 동시통역사가 러시아어로 통역을 하느라 세시간 가량 걸렸는데, 강의를 듣는 젊은 의사들의 초롱초롱한 눈과 진지한 경청을 잊을 수 없다. 그들과 함께 간단한 점심을 하고 수료증을 전달한 후 지난 사흘간의 행사를 마무리 하였다. 오후에는 강남세브란스병원에 세명의 젊은 의사를 연수보낸 국립 암센터에 가서 십여명의 스텦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그들의 주 관심사는, 4~50년전 우리 선배님들이 가졌을 것 같은, 젊은 의사들의 한국으로의 연수 교육과 공동 연구였는데, 최대한 지원할것을 약속했다.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약 세시간이 남아서 인근 28전사의 공원, 악기 박물관, 그리고 러시아정교회 사원을 찾았다. 1907년에 완공된 세계 8대 목조건축물의 하나인 젠코브 사원은 외벽 개보수 공사 중이어서 아쉽게도 아름답고 우아한 외양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내부는 경건한 분위기에 벽을 채운 이콘(ikon)으로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저녁 식사는 An Yevgenyi씨 부부가 고려인 협회가 있는 코리안 하우스로 우리를 초청했다. 카자흐스탄의 열악한 의료 환경으로 연간 10만명의 국민이 약 3천억원을 의료 관광 비용으로 지출하기에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카자흐스탄의 의료 수준을 향상시켜 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하였다. 보드카 술잔을 기울이며 석별의 아쉬움을 달래다 보니, 어느새 출국 시간이 다 되어간다.

 

이렇게 3박5일간의 카자흐스탄 출장은 마무리되었다. 출장을 마치면 숙제를 다하고 난 뒤의 느낌처럼 홀가분해지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카자흐스탄의 의료 발전에 대한 새로운 책임감이 양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듯 하다.

2017/10/23 10:40 2017/10/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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